부르고뉴의 전설을 넘어선 제자, 쟝 니콜라 메오를 만나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와인 분야에서 전설로 불리는 것은 어렵다.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그 이후부터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과 개성의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모두에게 두루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 정말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는 모두가 동의할만한 전설들이 존재한다. 와인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보면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들은 늘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지역을 구분해 따지자면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야말로 가히 전설들의 지방이라고 할만하다.
부르고뉴가 현대에 들어 전설들의 놀이터가 된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앙리 자이에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전설들의 전설, 현대의 부르고뉴 와인 스타일을 정립한 앙리 자이에다.
와인 이야기를 찾고 쓰는 사람으로서 앙리 자이에와의 인터뷰는 꿈에서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의 양조 철학과 기풍은 여전히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트레져러뉴스는 부르고뉴의 전설 아니, 부르고뉴의 신 또는 교황이라고 불리는 고 앙리 자이에의 자타공인 수제자이자 부르고뉴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중 하나인 메오-까뮈제를 소유한 쟝 니콜라 메오와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니콜라는 4월초 15년 만에 공식 방한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알려진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RC)의 명성에 앙리 자이에가 흠집을 냈다. 직접 개간한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 끄트머리의 밭, 크로 파랑투에서 생산된 와인이 와인 서쳐 순위에서 DRC를 제치고 병당 약 2210만원에 팔리면서다.
앙리 자이에의 와인이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희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현대 부르고뉴 와인의 스타일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인 탓에 그의 와인을 가장 정점으로 간주하는데다, 이미 작고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와인은 이미 돈이 많다고 해서 덜컥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고 싶다면 우선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려야 하고, 그 순서가 1년이 될 수도,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부르고뉴의 여러 와이너리들은 어떻게든 그와의 인연을 마케팅에 활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이 진정으로 인정하는 적통 제자는 2명 뿐이다. 그의 상속자이자 처조카인 에마뉘엘 후제와 그가 소작농으로 봉직하면서 와인을 만들어온 와이너리, 메오 까뮈제의 오너이자 현 와인 메이커인 쟝 니콜라 메오다.
쟝 니콜라 메오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세 형제의 막내던 그는 어렸을 때 양조에 뜻을 두지 않고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를 끝낼 무렵 아버지로부터 와이너리를 물려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일주일 간 고민 끝에 와이너리를 물려받게 된다.
재밌는 것은 그가 도멘에 들어오기로 결정했을 때, 와인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붙여준 멘토이자 스승이 바로 직전까지 메오 까뮈제의 밭을 소작농으로 일궈온 앙리 자이에였다.
수제자로서 스승의 와인에 대한 평가를 묻자 니콜라는 “스승과 난 비슷한 입맛을 가졌고, 특히 그는 미식을 즐겼다”며 “그의 와인에는 동네 레스토랑의 음식과 페어링을 고려한 미식가적인 스타일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특히 니콜라는 포도밭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양조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고, 밭을 통해 재료가 생산된 뒤의 일”이라며 “부모가 아이의 재능이 제대로 발현되도록 코칭하듯, 우리도 포도밭을 적절하게 코칭해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연장선에서 그는 와인메이커로서 자신을 지휘자와 작곡가 중 지휘자에 가깝다고 했다. 스스로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설명한 것이다.
니콜라는 앙리 자이에의 가르침의 정수를 묻자 “자이에는 줄곧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와인의 캐릭터를 살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자신의 와인에서 “순수한 과실미와 피네스(섬세함)을 반드시 느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언뜻 공존하기 어려워보이는 두 감각이 와인 한 잔에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 중 핵심인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설명이다. 다행히 그의 의도는 와인을 통해 잘 전달된 것 같다. 평론가들이 앙리 자이에의 철학을 이어받은 니콜라가 그 철학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으니까.
인터뷰를 마치며, 예순을 목전에 둔 니콜라의 10년 후 와인이 궁금해졌다. 10년 뒤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스승인 앙리 자이에가 아닌 쟝 니콜라 메오 본인만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설이라 불리는 최고의 스승에게서 양조의 정수를 배웠고, 스승에게 배운 것을 자신에게 맞게 조금씩 변주하기 시작한 니콜라. 그의 표정처럼 진중하고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메오 까뮈제 와인을 한잔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김태윤 기자 treasure@treasure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