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Story]구찌 Gucci
구찌오 구찌, 승마 용품을 중심으로 가죽 브랜드를 런칭.
구찌 창립자 구찌오 구찌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싶어,
호텔에서 일하면서 최상류층의 패션과 생활을 공부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상류층의 수년간의 스타일과 생활패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의 구찌는 구찌오 구찌가 접했던
영국 귀족 스타일을 토대로 섬세한 이탈리아 가중 장인의
기술력을 결합하여 주로 장갑이나 부츠 등
승마용품을 중심으로
가죽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이것이 구찌 브랜드 스토리의 시작이지요.
위기를 기회로, 독특한 모티브 구찌 시그니처 아이템의 시작!
마차의 활용도가 점점 줄어들고 승마 용품의 구매가 축소되자,
구찌오 구찌는 작업장을 확장하여 핸드백, 트렁크 등 생산제품을 다양화 합니다.
기존에 승마용품을 만들었던 구찌는, 승마로부터 영감을 받아
홀스빗 장식과 등자(발안장) 등을 모티브로 가죽용품을 장식하였습니다.
이 장식이 바로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 되었답니다.
1940년에는 전쟁과 수출 금지령으로 인해
금속, 가죽 등의 소재가 턱없이 부족했다고해요.
그 때, 구찌오 구찌의 사업을 돕고있던 첫째아들인
알도 구찌는 대나무, 삼마, 황마 등의 소재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으며, 대마와 삼마를 이용하여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연결되는 직조 여행가방을 만들어냈답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가죽 업체가 도산하였지만,
알도 구찌는 대안책으로 일반 가죽 대신에
돼지 피혁과 대나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어요.
전쟁 후의 위기는 구찌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뱀부백(bamboo bag)’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도약과 위기, 그리고 변화
구찌오 구찌는 브랜드 구찌를 직접 경영하면서
세명의 아들을 회사의 주주로 경영에 참석시켰습니다.
첫째 아들 알도 구찌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 덕분에
구찌는 뉴욕 진출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이끌어 갔답니다.
알도 구찌는 이후에도 아버지 이름인 구찌오 구찌를 따서
지금의 구찌 시그니처 ‘GG로고’를 만들고, 이를 소재로
가방, 악세서리, 옷 등을 제작합니다.
더불어 같은 해, 구찌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재키 백을 만들어 내고,
구찌는 다양한 나라에 매장을 내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합니다.
또한 톱스타와 유명인사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로서
명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1982년 구찌는 가족 경영진의 결정에 의해 경영을
S.P.A로 전환하고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구찌 가족 내부 분열로 구찌 브랜드가 잡다하게 생산되었고
구찌 브랜드에 위기가 찾아오며 재정난도 심화되었어요.
그 후에 마우리초 구찌는 옛 명성을 찾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영업하면서 구찌의 체제가 아예 바뀌게 되었답니다.
경영진들을 포함하여 구찌는 내부적으로 큰 변화들이 있었어요.
1994년 톰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구찌의 뉴 테마들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GG로고나 호스빗 등 구찌의 옛 유산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답니다.
변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찌의 기둥이었던 톰포드가 구찌 그룹과의 불화로
퇴사를 하게되어 구찌는 다시한번 위기가 찾아왔어요.
그가 떠난 후, 10년가량 구찌는 평범한 명품브랜드로 남아있었죠.
그리고 다시금 성공적인 도약을 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변화, 세계에서 가장 갖고싶은 럭셔리 브랜드 구찌
지금의 구찌를 만들어 준 전환점.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무명에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찌의 판단력에 의구심을 품었다고 해요.
그러나 그는 패션계를 뒤집어 새롭게 창조했어요.
지금의 구찌를 떠올리게 하는 트레이드 마크들이
바로 미켈레가 창조해 낸 것들이랍니다!
구찌의 트레이트 패턴 초록, 빨강, 초록 라인과
동물, 식물, 곤충 모티브 등 과거의 것들을 통해
지금의 세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어요.
구찌 매출의 60%이상이 35세 이하의 소비자에게 나온다고 해요.
그만큼 명품 브랜드임에도 ‘구찌스러움’은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답니다.
사진으로 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자!
촬영하면 돈이 된다, 얼마야